벚꽃은 피어날 때보다 질 때가 더 아름답다

벚꽃은 피어날 때보다 질 때가 더 아름답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가지마다 작은 몽우리뿐이었다.

아직은 이르다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창밖을 보자 벚나무가 한꺼번에 흰빛으로 터져 있었다.

마치 어제의 시간들을 조용히 몰래 쌓아두었다가, 오늘이라는 순간에 맞춰 일제히 피어난 것처럼.

너무 갑작스럽고 또 너무 아름다워서, 순간 내가 깜빡하고 지나친 며칠이 아쉽기까지 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벚꽃은 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풍경인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매년 처음인 듯 설렌다.

"벚꽃이 피었구나." 이 짧은 말 하나로 나는 봄을 실감한다.

햇살이 조금 더 따뜻해지고, 바람이 살랑거리는 건 한참 전부터 알았지만,

이상하게 벚꽃이 피어야만 진짜 봄이 온 것 같다고 느낀다.

 

어느새 이렇게 피었나.. 봄의 아름다움을 담는다

 

벚꽃은 그렇게 ‘봄’이라는 계절을 가시화시켜주는 존재다. 기온도, 날씨도, 옷차림도 아닌, 그저 나무 위에 소리 없이 피어 있는 연분홍의 꽃잎들이 계절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 반가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피자마자 곧 질 준비를 하는 꽃이라는 걸 너무 잘 아니까. 활짝 핀 모습을 마주한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마음 한편에선 ‘이 아름다움도 곧 끝나겠구나’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상하지. 이제 막 만난 벚꽃인데, 벌써부터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니.

 

벚꽃이 진다는 건 봄이 간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휘날리는 꽃잎들 사이로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꽃잎처럼 가볍고 어지럽다. 잡을 수 없고, 붙잡을 수도 없는 시간. 그래서일까. 나는 매년 벚꽃이 질 때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완벽하게 피어 있는 순간보다, 살짝 흩날리고, 바닥에 수북이 쌓이고, 바람에 실려 떠나는 그 모습에서 더 많은 감정을 느낀다. 덧없고, 짧고, 너무도 예뻐서 마음이 먹먹해지는.

그런 벚꽃을 보며 나는 자꾸 생각하게 된다. 우리 인생도 이 벚꽃처럼 찰나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진 않을까.

매일 똑같은 일상 같지만,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고, 지금 이 봄도 작년 봄과는 다르다. 똑같은 나무에서, 똑같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인데도 전혀 다른 감정을 주는 것처럼.

 

벚꽃은 우리에게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사랑하라.”고.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을 테니, 지금 이 찬란함을 기억하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 벚꽃길을 걷는다. 일부러 천천히. 어딘가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굴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벚꽃과 눈을 맞추고, 향기를 맡고, 흩날리는 꽃잎을 맞는다.

내 속도를 낮추고, 마음을 내어주면 벚꽃은 그 순간만큼은 정말 나만을 위해 피어 있는 것 같다.

벚꽃은 매년 피지만, 매번 다른 나를 맞이한다.

 

올해의 나는 작년보다 조금 더 바빠졌고, 조금 더 무뎌졌고, 조금 더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도 다행이다. 여전히 벚꽃 앞에서 멈춰 설 줄 아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그리고 여전히 나는, 벚꽃이 피면 반갑고, 벚꽃이 지면 아쉽다.
그 감정만으로도, 나는 아직 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다